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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번째 퇴사(6) - 모범생의 최후

최근, 돈벌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새삼스럽다.

 

자본주의라면 당연히 자본이 중심인데, 세상은 알려주지 않으려 노력했다.

세상은 자본가가 되라고 하지 않았고, 성실한 노동자가 되라고 길을 닦아 두었다.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에서 나는 피라미드의 꼭대기부터 배웠다.

 

아래 단계는 본능에 가까워서 굳이 교육이 필요하지 않았던 건가?

아니면, 감사하게도 내가 사는 사회는 이미 생리적 욕구나 안정의 욕구는 채워졌기에 윗 단계부터 배웠던가?

 

자아실현의 욕구.. 맞다. 인생에서 추구할만한 단계이다.

그런데 하위 욕구를 충족시키는 법을 배우기 전에 상위 욕구가 얼마나 값진 지를 주입받은 것 같다.

생명에 위협을 느꼈던 세대가 보시기에는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겠다.

 

국민학교 다닐 때는, 돈을 천하게 여겼던 것 같다.

내가 양반이 아닌데도 양반네들의 '안분지족(安分知足)', '안빈낙도(安貧樂道)'를 최고의 가치로 배웠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영어 단어 몇 개 보다는 꿈이 더 필요한 세상'이라고 배웠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맞다. 하지만 내 고백은 아니었다. 

영어에... 성적에... 현실에 열심인 적 없었는데, 시작도 전에 더 높은 가치를 단어로 배웠다.

 

대학교 시절에는, '먹고 대학생'이었다.

선배들이 꿈꾸던 대학 풍경을 TV 드라마로 풀어 둔 덕에 나는 흉내만 내는 가짜 시간을 보냈다.

 

지금은 일을 하다 보니, 일이 곧 취미이자 유일한 낙이 되어 있었다.

 

일은 욕구를 충족하는 수단이기보다,  자아실현의 길로 다가왔다.

내 일을 노동으로 평가받고 싶지 않았고, 예술로 평가받고 싶었다.

 

지금까지의 삶에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 즐거웠고 행복했다.

일을 예술처럼 했기에, 집단에서도 인정받았다. 너무 열심히여서 트러블도 있었지만 말이다.

 

다만, 주어진 길이 내가 선택한 길이였는지.. 아니면 세상에 강요받은 길에 마지못한 복종이었는지 생각해 본다.

길 없는 길을 가는 사람이 부러우면서도 용기가 없어 애써 외면하지 않았는지, 편안하지만 궁핍한 길을 걸으며 자기 합리화를 하지 않았는지 말이다. 

 

맞다! 세상이 이겼다.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일탈 없이 살다 보니, 바람직한 노동자가 된 것 같다.

주어진 일을 하는 것이 즐거움이고, 성취감이었으며, 소속감을 보상으로 받았다.

 

이직을 고려하지 않은 퇴사를 생각해 보니, 세상이 만든 길 경계에 있다.

스스로 과제를 부여한 적이 없다. 목표를 세우자니 당위성이 부족하다. 아무도 봐주지 않으니 진전이 없다.

 

어느 하나 뛰어나지 않았던 모범생의 말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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